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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그대로 둔 상태

by 정리되지 않은 기록 2026. 2. 17.

식탁 위에 뭘 올려뒀는지 정확히 기억하려고 하면,

손이 먼저 떠오른다.

들어오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내려놓는 동작이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식탁이 그냥 임시 선반처럼 굳어버렸다.

치우려면 치울 수 있었는데,

그쪽으로 몸이 가지 않았다.

 

물건은 하나가 아니었다.

봉투 같은 종이,

작은 상자,

영수증이 접힌 채로 얹혀 있었고,

그 옆에 열쇠가 굴러다녔다.

컵받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빈 자리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였다.

식탁은 원래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그날은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리해야 한다는 문장은 머리 어딘가에 걸려 있었고,

손은 다른 쪽으로만 움직였다.

주방 쪽 불을 켜고,

물을 마시고,

의자를 살짝 밀어놓는 것까진 했는데 식탁은 그대로였다.

 

식탁 위에 놓인 것들이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밥을 먹을 계획이 없었고,

앉아 있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던 것 같다.

꼭 필요한 이유가 아니라,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유지되는 상태가 있었다.

 

가끔 시선이 식탁을 스쳤다.

물건들의 윤곽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종이가 살짝 말려 올라간 모서리,

상자 테이프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치우는 순서를 떠올리면 생각보다 복잡했다.

어디에 둘지부터 정해야 했고,

분류를 해야 했고,

버릴 걸 골라야 했다.

한 번에 끝날 일 같으면서도,

시작하면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먼저 나왔다.

그래서 손이 식탁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물건들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위치가 조금 달라졌다면,

그건 내가 일부러 움직인 게 아니라 스치면서 밀린 정도였을 것이다.

식탁 위는 계속 ‘임시’였는데,

임시라는 말이 오래 유지될수록 그게 상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날을 따로 표시할 만한 일은 없었다.

다만 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그대로 둔 채로 지나간 시간이 있었다.

정리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냥 그대로 두는 쪽으로 흐름이 선택됐다는 점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