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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선 시간 욕실 불을 켜고 세면대 앞에 섰다.거울에 얼굴이 걸려 있었고 눈 밑이 조금 어두워 보였다.수도 꼭지를 잡았다가 놓았다.물은 틀지 않았는데 손바닥이 이미 젖은 느낌이었다.타일 사이 줄눈이 눈에 들어왔다.어제도 본 자리인데 오늘은 더 선명했다.칫솔 컵을 살짝 밀어 옆으로 놓았다.다시 제자리로 돌려두고 괜히 가장자리를 한 번 닦았다.환풍기 소리가 낮게 돌고 있었다.그 소리 위로 내 숨이 얇게 겹쳤다. 거울 속에서 내가 나를 보고 있었는데 시선이 자꾸 아래로 떨어졌다.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수건이 축 늘어져 있어서 모서리를 맞춰 걸어두었다.금방 다시 흐트러질 것 같았지만 그냥 두었다.문 밖 방은 불이 꺼진 채로 조용했다.욕실 조명만 밝아서 경계가 또렷했다.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몇 분을 서 있다가 결국 .. 2026. 2. 25.
주방에 들어갔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온 흐름 주방에 들어갈 때는 분명히 할 일이 하나쯤은 있었던 것 같은데,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그게 흐려졌다.불을 켜지도 않았고,그렇다고 그대로 서 있지도 않았다.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싱크대 앞에 잠깐 섰다가 방향을 바꿨다.컵이 놓여 있는 위치도 보였고,조리대 위에 올려둔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하지만 손이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뭔가를 집어야 할 타이밍이 오지 않은 느낌이었다. 냉장고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가 멈췄다.문을 열면 안쪽에서 찬 공기가 나올 걸 알고 있었고,안에 뭐가 있는지도 대충 떠올랐다.그래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생기지 않았다. 주방은 그대로였다.불이 꺼진 상태였고,창가 쪽에서 들어오는 빛만 바닥에 얇게 퍼져 있었다.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들도 움직이지 않았고,.. 2026. 2. 23.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다시 내려놓은 순간 펜을 쥔 건 분명 무언가를 쓰려고였는데,종이 위로 바로 내려가지는 않았다.손 안에 감긴 감촉은 익숙했고,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 다음 동작이 이어지지 않았다.펜은 공중에서 잠깐 머물렀다. 책상 위에는 이미 몇 장의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글자가 적힌 것도 있었고,빈 칸으로 남아 있는 부분도 보였다.펜을 내려놓을 자리는 충분했는데,어디가 맞는지는 바로 정해지지 않았다.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기보다는,쓰는 쪽으로 가지 않았다는 쪽이 더 가까웠다.문장을 떠올리지도 않았고,지워야 할 말도 없었다.그냥 손이 멈춰 있었고, 그 상태가 잠깐 유지됐다. 펜 끝이 종이에 닿으면 소리가 날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사각거리는 소리인지,가볍게 긁히는 느낌인지 정확하진 않았다.그 예상만으로도 동작이 늦춰진 것 .. 2026. 2. 21.
의자를 밀어 넣지 않은 채 지나간 장면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났을 때,다시 밀어 넣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테이블과 의자 사이에 남은 간격도 눈에 들어왔고,그대로 두면 통로가 조금 좁아진다는 것도 익숙한 감각이었다.그래도 손은 의자 등받이로 가지 않았다. 의자는 살짝 비스듬하게 빠져 있었고,바닥과 닿는 다리 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그 모양이 어색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오히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자리라는 표시처럼 남아 있었다.밀어 넣는 동작은 늘 자동에 가까웠는데,그날은 그 순서가 빠져 있었다.급하게 이동한 것도 아니었고,누군가를 피하듯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그냥 다음 행동이 먼저 이어졌을 뿐이었다. 의자를 남겨둔 채 몇 걸음 떨어지자,뒤에서 공간이 열려 있는 느낌이 따라왔다.방은 그대로였는데,자리가 완전히 비워지지 않은 상태로.. 2026. 2. 19.
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그대로 둔 상태 식탁 위에 뭘 올려뒀는지 정확히 기억하려고 하면,손이 먼저 떠오른다.들어오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내려놓는 동작이 있었고,그 다음부터는 식탁이 그냥 임시 선반처럼 굳어버렸다.치우려면 치울 수 있었는데,그쪽으로 몸이 가지 않았다. 물건은 하나가 아니었다.봉투 같은 종이,작은 상자,영수증이 접힌 채로 얹혀 있었고,그 옆에 열쇠가 굴러다녔다.컵받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그 빈 자리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였다.식탁은 원래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그날은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정리해야 한다는 문장은 머리 어딘가에 걸려 있었고,손은 다른 쪽으로만 움직였다.주방 쪽 불을 켜고,물을 마시고,의자를 살짝 밀어놓는 것까진 했는데 식탁은 그대로였다. 식탁 위에 놓인 것들이 방해가 되지는 않.. 2026. 2. 17.
조명을 켜둔 채 다른 방으로 이동했던 시간 방을 나설 때 조명을 끄지 않았다는 걸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다.스위치는 문 옆에 있었고,손은 그 근처를 스쳤지만 눌리지 않았다.불이 켜진 채로 방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몇 걸음 옮긴 뒤에야 떠올랐다. 빛은 문틈을 넘어 복도까지 이어져 있었다.밝다기보다는 남아 있다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방 안의 물건들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로 놓여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다시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조명을 끄는 건 늘 마지막 동작처럼 여겨졌는데,그날은 그 순서가 빠져 있었다.급하게 이동한 것도 아니었고,누가 부른 것도 아니었다.그냥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먼저 나왔다. 다른 방에 들어가서도 불에 대한 생각은 흐릿했다.책상 앞에 앉아 의자를 조금 당기고,창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방 하나를 통과했을 뿐인데,이전 공.. 2026.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