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들어갈 때는 분명히 할 일이 하나쯤은 있었던 것 같은데,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그게 흐려졌다.
불을 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대로 서 있지도 않았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싱크대 앞에 잠깐 섰다가 방향을 바꿨다.
컵이 놓여 있는 위치도 보였고,
조리대 위에 올려둔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손이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뭔가를 집어야 할 타이밍이 오지 않은 느낌이었다.
냉장고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가 멈췄다.
문을 열면 안쪽에서 찬 공기가 나올 걸 알고 있었고,
안에 뭐가 있는지도 대충 떠올랐다.
그래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생기지 않았다.
주방은 그대로였다.
불이 꺼진 상태였고,
창가 쪽에서 들어오는 빛만 바닥에 얇게 퍼져 있었다.
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들도 움직이지 않았고,
의자도 아까 놓인 각도로 남아 있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는 의식하지 않았다.
들어왔으니 나갈 수도 있다는 정도의 흐름만 이어졌다.
돌아서서 다시 현관 쪽으로 발을 옮기는 데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주방을 나서면서도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불을 켜지 않았는지,
물을 틀지 않았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애초에 시작된 동작이 없었으니,
끝낼 것도 없었던 셈이었다.
다른 방으로 들어와서 잠깐 서 있다가,
방금 주방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거기서 뭘 했는지를 떠올리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쪽이 더 정확하다는 걸 알았다.
시간으로 치면 아주 짧았을 것이다.
몇 걸음 들어갔다가 몇 걸음 나온 정도였다.
그래도 주방에 들어갔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온 그 흐름은,
중간이 비어 있는 채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