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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순간2

물을 마시려다 컵만 만지고 내려둔 순간 주방 불을 켜자 하얀 불빛이 식탁 위로 먼저 떨어졌다.밤이라 그런지 공간이 조금 비어 보였다.싱크대 앞에 서서 컵을 하나 꺼냈다.유리컵이 손에 닿자마자 차가운 감각이 또렷했다.수도 꼭지에 손을 올려두고 잠깐 그대로 있었다.물을 틀기 전의 고요가 길게 이어졌다. 컵 안을 들여다봤다.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안쪽을 한 번 더 확인했다.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렸다.그 소리 사이로 내 숨이 섞였다. 컵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마른 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손바닥으로 한 번 더 닦았다.물을 마시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그런데 목이 마른지 아닌지 잘 모르겠었다. 컵을 싱크대 위에 살짝 내려놓았다.바닥에 닿는 소리가 생각보다 단단했다.다시 들어 올릴까 하다가 손을 빼버렸다.컵은 그대.. 2026. 3. 1.
물을 따르다 멈춘 채 서 있었던 순간 컵을 꺼낸 건 그냥 물을 마시려고였는데,싱크대 앞에 서서 수도를 틀고 나서부터 흐름이 조금 느려졌다.물소리는 일정했는데 손이 따라가지 않았다.컵이 반쯤 차는 동안 아무 생각도 안 했다고 말하기엔,몸이 너무 가만히 있었다.주방에 들어올 때만 해도 특별한 기분은 없었다.방에서 바로 나왔고,불은 그대로 둔 채였다.바닥은 맨발에 차갑게 닿았고,그 감각이 오래 남았다.컵을 들고 있다는 사실도 중간쯤에서 희미해졌다. 처음엔 그냥 아침이라 그런 줄 알았다.잠이 덜 깼다거나,창가 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애매해서 시선이 거기로 갔다거나.주방 불은 켜져 있었고,수도 아래에서 반사되는 빛이 싱크대에 퍼져 있었다. 어디서 멈췄는지 생각해보면 딱 집히는 지점은 없다.전날 미뤄둔 일도 있었고,책상 위에 놓인 종이도 떠올랐지만 그게.. 2026. 2. 11.